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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받아야할 茶山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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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차인연합회 작성일05-06-14 00:06 조회2,8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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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본 받아야할 선각자 茶山 丁若鏞 >
- 동경대학교의 한 교수는 "만일 200년 전에 조선왕조가
茶山 정약용 先生을 영의정으로 세워 그가 경륜을 펼치게 하였더라면
일본이 조선의 종이 되었을 것이다" 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하였다고 한다
듣기로는 월남의 민족주의자요, 공산주의자였던 호치민이
지하에서 투쟁하던 시절에 쫒기는 길이 아무리 급하여도
다산 선생의 저서 "牧民心書" 는 꼭 들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하노이 市에 있는 호지명 유품 전시실에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집무실 책상위에두고 수시로 읽곤 하였다는 설명서와 함께
다산의 " 목민심서 " 전권이 보퉁이에 싸인채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茶山 思想, 정신의 요체는 牧民思想 이다
그는 최고의 가치를 백성들을 평안하게 돌보는 목민정신의 실천에 두었다
시대는 바뀌어도 그의 이런 정신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날로 더욱 뚜렷해 지고 있다
- 그는 1762 (영조38) - 1836 (헌종 2)
조선 후기 實學을 집대성한 학자이자 문신, 선각자
정치,경제,지리,經學등에 능통했다.
牧民心書 등 500 여권의 저서와 함께 실용다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쇠퇴한 茶文化를 부흥 시키고자 각다고,茶務 등을 쓰고
지인들과 茶와 詩로써 교우하며 명실공히 한국차문화의 代父 역할을
감당하였다. 詩와 禪과 茶가 완전히 합일된 경지에서 노닐던 진정한 茶人.
아홉번 찌고 말리는 제다법을 간소화 함으로써 차의 대중화를
이루고자 하였고, 茶馬 무역을 주창하기도 함.
1789 (정조 13) - 式年文科에 甲科로 급제- 벼슬길
1799 - 西學 (천주교 신자로 귀의) 문제로 탄핵을 받자 自明疏를 올리고 사직
1801(순조1년)- 황사영 백서사건-辛酉迫害 때 장기- 강진으로 유배 이후 다산
기슭에서 18年간 학문에 몰두 經書學 즉 정치제도,행정기구
토지정책,분배문제,노비제도 등실질 개혁을 위한 학문적인
체계를 완성하고 많은 著述을 했다. 우리문학과 사상의 거봉.
1808 (순조 8) -강진에서 茶나무가 야생하고 있던 茶山洞으로 거처를 옮김
1818年(순조 18)-57세에 풀려나 고향(양수리 강가 남양주 능내)에서 茶와 저술
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茶信契 - 강진을 떠나게되자 제자들과의 두터운 정의를 끊지 않고자 만들었다
48세 때 - 草衣 (24세)를 강진에서 만나 유교경전과 詩道를 가르침.
-저서 ; 牧民心書, 經世遺表, 欽欽新書, 丁茶山全書 등 500여권
實學者, 자는 美鏞, 호는 茶山-三眉-與猶堂-俟菴-紫霞道人-鐵馬山樵
천주교 교명은 요안, 본관은 羅州.

< 강진 유배-외롭고 적막 했던 심정-벗 윤희영에게 보낸 편지 >
- 7년 동안 유배생활에 문을 닫고 칩거하니 날씨는 춥고
먹을 것 입을 것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
노비들까지도 외면하고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오.
그래서 낮에는 하늘과 구름뿐이고 밤에는 벌레소리와
댓잎 스치는 소리뿐이라오. -
< 유배지 나그네 茶山에게 차를 보내준 은혜에 고마움 전하는 詩 >
- 혜장의 많은 제자 중에
색성이 가장 뛰어났네.
이미 화엄교를 마쳤고
겸하여 두보시까지 익혔구나.
새싹 찻잎을 불에 잘 말려서
진중하게 외로운 유배객을 위로하네. -

시집 < 茶盒詩帖 > 에서
- 벽돌로 만든 작은 차부엌은
이화선풍의 형상이다
차는 끓는데 산동은 졸고
나부끼는 연기 모여 스스로 푸르다 -

< 春日체천雜詩 >
- 아곡의 찻잎이 처음을 피어날 제
한 포를 마을 사람의 호의로 얻었노라
체천의 수품(水品) 얼마나 맑은지
한가히 은병으로 시험해 보리라 -

< 新 茶 >
- 금장(金帳)을 걷은 밖에 아기(牙旗) 높이 세우고
해안과 어안이 눈에 가득 꽃처럼 피어 오른다
가난한 선비는 점심 먹기조차 어려운데
맑은 샘물로 우전차를 한가로이 끓인다
신선의 경지에선 백성 근심 묻지 마라
누가 사객가(謝客家)에서 수액(水厄)을 나누었나
가슴속엔 박히고 체한 것 없다고 자신했는데
맑은 차 마셔보니 다시 자랑할만 하다네 -

< 文山 李載毅 - 화답 詩 >
- 비 갠 뒤 새 차잎 깃발인양 피어나니
차부엌 차맷돌 살펴야 하겠구나
동방엔옛부터 차 세금 없었구나
앞 마을 개 짖는 소리 두려워 마라 -

- 목 리